현대인들의 가치관을 최초 형성하거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체는 곧 `네트워크`다.
사람과 사람간의 이음새 역할을 하는 인터넷 네트워크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가세하면서 더더욱 촘촘하게 얽키고 설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하지 않았던 4050세대까지
인터넷세상의 정보생산자 혹은 수용자로 흡수되면서
그 범위는 나날이 확산일로다.
완전한 `네트워크 사회`가 된 것이다.
올해 우린 인터넷 도입 30년사를 맞았다.
세대별로 온라인 지배력과 세력권이 뚜렷해질수록
직시하게 되는 현상은 새 가설이나 이론, 트렌드에 아주 민감하다는 거다.
이는 정신적 혼란을 피하고자 하는 면역학적 행동 성향으로 일컫는다.
이는 또 `즉각적인 수용` 자세로 이어진다는 점에 우린 주목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가 맹목적인 집단적 `정보맹신`에 빠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http://www.flickr.com/photos/epi2oh/5118043428/
인간 관계망 포화, 150선을 넘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부족 구성원은 150명 수준을 유지한다.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버에 따르면 인간이 단체로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150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단체가 단체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알고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이다.
하지만 지금 네트워크로 맺어진 단체 구성원은 150명을
훌쩍 넘어 수십 배에 이른다.
그 이상이 되면 구성원들이 서로 다양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우리의 두뇌는 각각의 사연과 감정을 가진 수 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감당할 정도로 크지 않다.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하기 힘든 작금의
행동 패턴들이 자꾸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 한병철씨의 `피로사회`에서 지적한 성과주의,
성과잉여성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다문화주의와 규제 철폐, 개인적 욕망의 긍정 등
다양한 변화로 `긍정성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면,
`네트워크 사회`는 바로 이런 요소들이 충분히 자리를 잡게 해준 배경을 제공한다.
피로사회에서 거론한 `성과주의`는 이곳에서 시작된 산출물일 수 있다.
구성원 150명이 넘는 순간 가장 먼저 부닥치게 되는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이분법적 개념은 빈부의 격차,
지식사회의 불평등 등으로 나뉘는 세부 기준을 만들었고,
이는 성과주의가 이 사회에 가파르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일종의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http://www.flickr.com/photos/intersectionconsulting/4126503365/
`피로사회` 본문에서도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으며,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 시대였다고 일컫는다.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을 관통하는 속성은 바로 `맹목성`이다.
즉, 비판 없는 `정보맹신`이다.
사회적 관계망은 최근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도식화되고 있다.
SNS 세상의 소위 빅마우스들이 수많은 팔로우 부대를 양산하면서
또 다른 관계 구성원들이 어떤 콘텐츠를 퍼 날랐는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여기에 즉각적으로 응전한다.
사회적 소속과 이탈은 SNS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린 주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혹시 이들과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또는 트렌드에 앞선 자들에 비해 나는 행여나 뒤쳐져 있는 게
아닌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성과주의 사회가 이런 압박감을 거세게 안겨 준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비통계학적 데이터 논리에 네트워크 사회는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내가 맺은 일촌의 얘기가 마치 사회 통념 혹은
이 시대 이데올로기의 전부인양 비춰지는 모순된 대표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네트워크 사회는 부작용을 일으킬 공산이 무척 크다.
이렇게 필터링 없이 적극 수용된 시대정신은
바이러스처럼 주변인들로 2차, 3차로 확산된다.
피로사회에서 지적한 성과주의도 이런 경로를 타고
퍼져나갔다고 필자는 거듭 강조한다.
실제로 2010년 `피로사회`라는 책이 출간될 당시,
공교롭게도 트위터 등의 영향력이나 활성화와 거의 비슷한 시점 일치를 본다.
못해도 성과사회를 만들어 낸 것은
이전 네트워크 서비스 모델일지라도 이런 가치관을
빠른 속도로 복제 확산시키는 일은 SNS가 적잖이 일조한 것이다.
http://www.flickr.com/photos/aboyandhisbike/4179894712/
아직은 개인정보노출에 덜 민감한 사용자들이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이미지와 글을 등록하고,
주변 친구들이 비슷한 콘셉트의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남보다 더 낫고 더 잘난 사람이고픈 `위계의식`,
소위 말초적 욕구가 이 사회를 획일적인 성과주의로 몰아갔다는 생각이다.
성과사회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를 취한다. .
네트워크 사회를 통해 필터링 없이 받아들여지는 정체 모를 정신∙세계관은
짧은 시간안에 내 생각과 비슷한 무리나 소속 원들의 사고를
탈이념화하는 문제를 껴안고 있다.
때문에 존재의 결핍과 관련해 사람들은 과잉활동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강제 혹은 원칙을 만들어낸다.
http://www.flickr.com/photos/ajc1/499525325/
성과주의가 네트워크를 타고 전파되면서
우린 지나친 물질주의 불행에 빠져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성과주의가 지향한 목표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쫓고 쫓는 부와 성공 아닌가.
이렇게 만든 사회적 명성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고, 불행을 초래했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씨는 “개개인이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때로는 부나 명성을 쌓는 과정에서 가까운 인간관계와 같은
중요한 요소를 악화시킨 경우도 발생한다.
피로사회에선 `성과∙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인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 같은 후유증은 결국 자신이 형성해 놓은 네트워크를
자신이 직접 붕괴시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행복이란 무엇인가`
`갈등의 시대 원효의 해법` `생각 정리의 기술`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서점가 진열장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다.
http://www.flickr.com/photos/24481894@N08/4473843139/
적어도 피로사회가 제기한 패러다임이 현재 고착화되기 보단 적어도
이념이탈 현상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네트워크와 결합된 새로운 이념은 급속도로 전파되나
결국 이 또한 새로운 개념이나 가치관이 대두되면 정복될 수 있다.
장기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가치관이 있는 반면,
빨리 퍼졌다가 금방 소멸되는 시대적 가치관도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사회 속성이 대부분 그러하다.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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